성 프란시스 수도회

조회 수 : 9846
2013.08.03 (21:56:49)

 

                   K-1.png

 

 

이 이콘은 오랫동안 아씨시의 성 다미아노 성당에 걸려 있었기에 “성 다미아노 십자가”라고 불리어졌다. 이 십자가는 12세기에 시리아 수도자에 의하여 그려진 비잔틴 양식의 이콘이다. 풍요로운 의미가 담긴 이 이콘에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영광의 모든 신비가 잘 묘사되어 있다.

이 이콘은 분명 요한 복음에 기초를 둔 요한계 이콘이다. 가시관 대신 놓여진 영광의 관은 이것을 입증하는 분명한 표이다. 여기서 예수의 수난과 죽음이 영광으로 변모되어 있다. 예수님의 오른쪽 옆구리 상처 역시 사랑하는 사도 요한에 의하여 표현된 신앙고백의 하나이다.

이 이콘은 예수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주는 공관복음서들과는 달리 요한의 독특한 표현을 빌어 그리스도, 하느님 말씀의 심오한 신비를 말해준다. 요한 복음은 빛과 어두움 사이의 투쟁을 묘사하고 있다(1, 5). 이 이콘에서 이 마지막 싸움의 결과가 두드러진다. 승리를 거둔 그리스도의 몸이 어두운 배경(즉, 검은 색은 빛에 반대되는 상징이나 불신앙의 상징, 죄의 상징으로서)과는 사뭇 대조적으로 더욱 더 밝은 빛을 비추고 있다. 한편, 붉은 색은 사랑을 상징하며 이콘에 관한 모든 것을 뒷받침해 주고, 어두움을 극복한 빛과 사랑의 승리를 극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1205년 성 프란치스꼬는 바로 이 십자가의 주님으로부터 “가서 무너져가는 나의 집을 고쳐라”하는 음성을 들었다.(2첼 10) 그는 즉시 이 성당의 보수에 착수하였고, 이후 성 베드로 성당과 뽀르찌웅꿀라의 천사들의 성 마리아 성당도 보수하였다. 주님의 이 말씀이 교회 재건을 의미함을 그는 나중에야 깨닫게 된다. 따라서 성 프란치스꼬의 초기 삶에 있어 중대한 전기를 마련해 준 이 십자가는 타우 십자가와 더불어 프란치스칸들의 중요한 상징이 되었다. 이 십자가는 1260년 성 다미아노의 글라라 자매들의 이전과 더불어 성녀 글라라 대성당으로 옮겨져 보관되고 있다.

우리 모두 성 프란치스꼬가 이 십자가 앞에서 바쳤던 다음과 같은 기도를 바치며 이 이콘에 대한 신심과 교회 쇄신에 대한 열망을 지닐 수 있도록 하자: “지극히 높으시고 영광스러운 하느님이시여, 내 마음의 어두움을 밝혀 주소서. 주여, 당신의 거룩하고 진실한 뜻을 실행하도록 올바른 신앙과 확고한 희망과 완전한 사랑을 주시며 지각과 인식을 주소서. 아멘.

1. 테두리: 조개껍질

조개껍질들로 이루어진 이콘의 테두리는 조화된 색조를 이루고 있다. 조개는 그 아름다움과 견고성 때문에 고대인들에게 천상적 아름다움과 영원함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이 이콘의 조개 테두리는 천상의 신비를 나타내주고 있다.

테두리의 밑부분은 열려 있다. 이 열려져 있는 부분에 열심한 신앙인으로 여겨지는 듯한 네 사람이 보인다. 두 명은 쉽게 식별이 되고, 나머지는 윗부분만 볼 수 있다. 그들은 이미 하늘나라에, 하늘왕국에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앙에 커다란 크기의 몸으로 채워진 예수님은 거룩한 도성에서의 생명의 나무(창세 2, 9 ; 묵시 22 : 14, 19)로서 나타내 보이신다. “주님의 빛 속”(묵시 22, 5)에서 그 분 팔 아래에 있는 인물들은 “만일 밀알이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 24)는 말씀대로 살아있는 열매들이다. 이와같이 이 이콘은 우리에게 하느님 왕국을 계시해 주고 있다.

2. 영광의 후광

영광의 후광은 그리스도의 고통의 신비를 덮어 가리지 않고, 오히려 영광 속에 그 의미와 성취를 밝히 드러낸다. 예수님은 이미 영광을 받으신 분으로 나타나신다. 따라서, 예수님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기쁨의 상태에 있다. 우리는 이 후광의 빛 안에서 전체 이콘을 읽어야 한다. 이 후광은 죽음을 뛰어넘는 생명의 승리를 선포한다(요한 12,24).

후광 안의 십자가는 예수님의 생애를 요약하고 있다. “그 분은 본질이 하느님이셨지만,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두가 입을 모아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 찬미하며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게 되었습니다”(필립 2,6-11).

3. 예수님의 옷

예수님의 옷은 금사로 장식한 아마포 잠방이로 되어 있으며 이는 제의에 사용되던 것이다(출애 28,42). 마태 12,4절에 보면, 예수님도 다윗이 사제로 활동하였다는 것을 인지하고 계셨다. 예수님은 다윗과 비슷한 허리에 두르는 간단한 옷을 입고 계시며, 여기 이콘에서 사제로서 행동하고 계시다는 것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예수님은 당신 스스로가 희생 제물이 되셨고 스스로를 영원한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주셨다.

4. 성삼의 성전이신 예수

예수님 가슴팍 아래 중앙에 사람 머리의 윤곽을 어렴풋이 식별할 수가 있는데, 그 자태는 거의 옆모습을 나타내 보이고 있으며 예수님의 왼편을 향해 있다. 그것은 예수께서,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요한 17,21)라고 말씀하시듯 성부를 나타낸다. 성부의 형상 아래에 둥근 고리 모양이 있고 그 안에 왼쪽을 향하고 있는 또 한 사람을 볼 수 있다. 원 안의 인물은 영원한 분 즉 나자렛 예수에 앞서 존재해 있던 말씀이신 성자이시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이마 위에 날개를 펼쳐 하강하는 듯한 한 마리의 비둘기성령이시다.

삼위일체에 깃들여지고 세 분의 신적 위격(位格)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성소이다.

5. 예수님 얼굴 위의 휘장

이 이콘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예수님의 얼굴과 후광과 목까지 얇은 천에 가리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님의 영광이 구름의 장막으로 뒤덮여 있었던 것처럼(출애 24,16), 예수의 영광은 그분의 인성(人性)에 의하여 가리워져 있다. 사도 바오로는 “그분의 후광은 그분의 육체”라 하였다(히브 10,20). 예수님 성변모 때에 장막이 말끔히 걷어치워져 “그분의 모습이 그들 앞에서 변하여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눈부셨다”(마태 17,2). 오로지 베드로, 야고보 그리고 요한 사도만이 예수님의 영광을 보았다. 그러나 여기서는 모든 신자들이 보게 된다.

우리가 인간적으로가 아니라 영적으로, 즉 신앙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그만큼 그분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육적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영적인 것은 생명을 준다”(요한 6,63).

6. 예수님의 눈

또렷하게 뜨고 계신 예수님의 눈은 그분이 살아계신 분임을 보여준다. 그분 자신이 말씀하신다 :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이고 살아 있는 존재이다. 나는 죽었었지만 이렇게 살아 있고 영원무궁토록 살 것이다”(묵시 1,17-18). 그분은 생명을 주관하는 분이시고(사도 3,5) 생명 자체이시다(요한 14,6).

또한 예수님 눈은 얼굴 전체에 비하여 어울리지 않게 매우 크다. 이것은 예수님이 항상 하느님을 향하여 계신 분이기에(요한 1,18), “아버지를 본 유일한 사람”(요한 6,46)으로서 “보시는 존재”이심을 말해주는 하나의 묘사 방법이다.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요한 14,9).

예수님의 시선은 하늘과 땅의 중간을 향해 있다. 그것은 예수님은 온 인류를 위하여 아버지 하느님께 자신을 바치시는 대사제요 중재자(히브 8,6)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분의 눈길은 매우 위엄스럽고 동시에 평온하다. 즉, 예수님은 당신 자신의 역할이 얼마나 막중한 것인가를 온전히 깨닫고 계시기에 바라보시는 눈길이 위엄스러워 보인다. “지옥의 문도 감히 교회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라는 것을 그분은 알고 계셨기에 그렇듯 일별의 눈은 마냥 평온하기만 하다. 그리고 예수님 눈은 또한 우리를 보고 계신다.

7. 예수님의 목

예수님의 목이 아주 두툼하다. 부활하신 후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 나타나시어 그들에게 숨을 내쉬시며 말씀하셨다 :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다”(요한 20,22). ‘숨’이라는 그리스말은 인간 창조의 그 순간을 상기시키게 하며(창세 2,7), 예수님의 숨은 새로운 창조요 참 부활을 가져다줌을 암시하고 있다(에제 37,9; 로마 4,17). 두툼한 목은 바로 영을 불어넣어 주시는 즉 창조의 힘을 지니신 분을 표현한 것이다.

8. 예수님의 상처

예수님의 손, 발 그리고 옆구리의 상처하느님의 어린양의 피를 쏟아내는 샘으로 변화되었다. 피는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원을 얻어주신 새 계약의 피이다 :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흠없는 제물로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는 데나 죽음의 행실을 버리게 하고 살아계신 하느님을 섬기게 하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겠습니까?”(히브 9,12.14).

두 천사들예수님 손의 상처를 유심히 응시하고 있다. 예수님 팔 밑에 있는 다른 천사들은 하느님의 독생 성자가 흘리신 비참한 피의 광경에 매우 놀라운 표정을 짓고 있다.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그 뒤에 올 영광을 미리 알려주신 성령” 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천사들일지라도 이 사건을 보고 싶어합니다”(1베드 1,12)라고 적는다.

9. 예수님 팔 아래에 있는 인물들

이들은 우리가 보기에 왼쪽에서부터 성모 마리아, 사도 요한, 마리아 막달레나,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백부장이다. 이들은 예수님과 가까웠던 사람들로써 이들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기도가 받아들여졌음을 알 수 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나에게 맡기신 사람들을 내가 있는 곳에 함께 있게 하여 주시고... 나에게 주신 그 영광을 그들도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요한 17,24). 더욱이 이들은 모두 빛으로 휩싸여 바로 “빛의 자녀들”(요한 12,36)로 변해 있다.

또한 여기 인물들 모두의 키가 같은 것은 각 사람의 개인적인 거룩함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만이 전부로서 모든 사람 위에 군림하시는 분”(골로 3,11)이심을 뜻한다.

끝으로 이들은 똑같은 커다란 눈, 작은 입, 그리고 달걀형의 얼굴 모습을 하고 있어, 서로 닮았다. 예수님의 얼굴도 그들과 같아 보인다. 사도 바오로의 말씀대로 “하느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에 택하신 사람들이 당신의 아들과 같은 모습을 가지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로마 8,29). 그리고 그 아드님은 ″아버지의 살아계신 형상”(골로 1,15)이시요, 또한 “나를 본 그 사람은 아버지를 뵌 것”(요한 14,9)이라고 말씀하신 분이시다. 이와같이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아버지와 똑같은 유형을 접하게 된다. 본래의 하느님 모습이 예수님에게서 되찾아진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하시고,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셨다”(창세 1,26).

① 성모 마리아

“오필의 금으로 단장한 왕후는 당신 오른편에 서 있나이다”(시편 45,10)라는 말씀처럼 성모 마리아는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오른 편에 서 계신다. 동방 문화에서 이는 영예의 자리를 뜻한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여인”(루가 1,30)이시며, 새로운 에와 육화된 말씀의 어머니이시자 성령에 의해 우리의 어머니가 되신 분이다.

요한을 바라보고 있는 마리아의 얼굴은 충만한 부드러움으로 빛나고 있다. 마리아는 “어머니, 당신의 아들을 보십시오”(요한 19,26)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신다. 마리아는 요한 안에서 예수님을 보시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서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신비를 관조하신다.

마리아는 왼손을 얼굴로 가져가며 요한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의 신비 앞에서 감탄을 금치 못하고 계신다. 성모님과 마리아 막달레나의 이런 손동작은 자신들의 얼굴을 가리지 않도록 얼굴 윤곽의 바깥에 그려졌다. 성서는 이러한 동작들의 의미에 대하여 잘 설명해 주고 있다(지혜 8,12 욥기 21,5. 29,9). 마리아가 형언할 수 없는 부드러운 눈으로 요한을 바라보시며 온화하게 미소 지으신다. 우리들은 “그 여자의 남은 자녀들”(묵시 12,18)이기에, 성모님의 눈길이 우리들에게도 널리 미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행한다면(요한 2,5), 마리아의 미소띤 빛이 우리 위에도 번질 것이다.

마리아와 예수님은 이 이콘에서 유일하게 미소짓고 계시는 두 분이시다.

한편 마리아의 오른손은 예수님을 가리킨다. 이 동작은 대화 상대인 요한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예수가 그 들 두 생명을 충만케 하신 분이라는 것도 뜻한다.

마리아의 얼굴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 그것은 예수님 얼굴을 그대로 반영한 표정이다.

※ 성모님의 옷을 살펴보자

성모 마리아의 흰 겉옷첫째로 복음에 대한 충실성이 승리하였음을 나타낸다(묵시 3,5). 두 번째,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깨끗해진 정화(淨化)의 상징이다(묵시 7,14). 마지막 세 번째, 하느님께서 성인들에게 성취하라고 주신 선행들의 상징이다: “어린양의 혼인날이 되었다. 그분의 신부는 몸단장을 끝냈고, 하느님의 허락으로 빛나고 깨끗한 모시옷을 입게 되었다. 이 고운 모시옷은 성도들의 올바른 행위이다”(묵시 19,7).

마리아는 이 외투를 두르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분이다. 왜냐하면 태중에 예수님을 모실 정도로 “하느님의 말씀을 믿으신 여인이시고”(루가 1,45),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제자들에게 믿음을 보여주셨으며, 갈바리아상 구속사업을 위해 구원 생명을 낳아 주셨기 때문이다.

● 흰옷 위에 줄지어 장식된 보석들과 귀금속들은 성령의 선물(하느님의 은총)을 상징한다(창세 24,22 ; 에제 28,13 ; 이사 61,10). 마리아는 완전히 그것들로 덮여 있다. 여기 보석들은 하느님의 은총을 가득히 받은 여인, 혹은 은총이 가득한 여인, 신성한 이름으로서의 마리아라는 의미를 우리에게 전해 준다.

● 길다란 외투 속에 마리아가 검붉은 옷을 입고 계신다. 붉음은 사랑의 상징적인 색채이기에 검붉음은 열애(熱愛)를 의미한다. 즉, 그녀의 특별한 내구력에 의하여 사랑의 강도가 깊어진 것이다. 이런 색깔이야말로 칼로 살을 에이는 듯한 아픔과 십자가의 발 밑에서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고통의 삶을 온 가슴으로 끌어안아 우리들의 어머니가 되신 이 여인에게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

자주색 속옷은 그녀가 예수 그리스도 곧 육화된 하느님의 말씀을 담고 있는 참다운 계약의 궤임을 상기시켜 준다. 사실 고대 계약의 궤의 내부는 자줏빛 천으로 두르고, 주께서 말씀하신 십계명을 새긴 돌판 두 개를 담고 있다.(신명 10, 1-5) 이 궤는 마리아의 태중에 살아계신 말씀,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려 했던 성모 마리아의 형상이었다.

② 요 한

요한은 최후만찬에서 처럼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요한 13,23). 그는 실로 물과 피가 샘솟는 사랑의 옆구리 상처 아래인 예수님과 성모님 사이, 사랑의 핵심 부분에 자리하고 있다.

요한의 머리는 성령에 의해 어머니가 되신 마리아에게 기울어 있다. 이는 성모님의 사랑을 맛보고 그 사랑을 받아들이려는 어린이와 같은 자세이다.

성모님이 하신 것처럼 그의 오른손은 부드러움과 찬탄의 대상이신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다. 요한의 장옷은 영원한 지혜에 대한 사랑을 상징하는 장미 빛인데, 이는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발견한 그 지혜에 대한 사랑을 나타낸다. 성서에서 이런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 “원하는 사람들이 알아 볼 수 있도록 지혜는 스스로를 나타내 보인다”(지혜 6,13). “나를 사랑하면 내 사랑을 받고 애타게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잠언 8,17).

요한의 하얀 속옷은 육에 대한 승리, 즉 교회 전통이 그에 대하여 말한 완전한 정결을 의미한다. 이 정결이 요한에게 지혜와 성령을 받을 만한 자격을 얻게 하였다(지혜 1,4).

③ 마리아 막달레나

“지금 꼴찌지만 첫째가 될 사람이 있다”(루가 13,30)는 말씀과 같이 예수님의 왼쪽 가장 가까운 곳에는 한 때 악령의 무리들에 사로잡혔던(루가 8,2) 마리아 막달레나가 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의 밝고 붉은 색은 사랑을 상징한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머리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의 머리에 닿아있는데, 이는 그들이 단순히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니라 비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왼손을 입에 대고 있는 표정을 살펴보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처럼 그녀 역시 비슷하게 경탄과 놀람의 상태에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경탄하는 까닭은 그녀의 동료에게 “속세에서 저는 매춘부였지요. 그런데 지금 예수님 가까이에 서 있는 저를 보세요”라고 하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비밀을 들어내고 있는 때문이다.

그녀는 예수님이 여행하실 때, 비록 갈바리아처럼 먼곳(요한 19,25)일지라도 함께 동행하였다. 그녀는 사도들에게 “내가 주님을 뵈었습니다!”(요한 20,18)라는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한 전령사였다. 의심할 나위 없이 마리아 막달레나는 이층 다락방에서 성모님 그리고 다른 여인들과 함께 있었다(사도 1,14). 숱한 악령들에게 사로잡혀 그 공포감에 시달렸던 이 여인은 분명히 아주 대단한 열정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청했을 것이다.

④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이 여인은 예수님의 사촌 야고보의 어머니이다(마태 27,56;13,55). 그녀는 십자가의 발치에 성모님과 함께 있던 사람으로 언급되고 있다. 이 여인은 사도들과 함께 지냈으며 성령의 세례를 준비하면서 기도에 전념하였던 여인들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다(사도 1,5. 13-14).

그분을 믿기에 어려움을 주는 예수와의 “친척관계”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은 갈바리아에 이르기까지 예수님께 줄곧 충실하였다. 아마도 그녀는 언젠가 하느님의 심판이 있는 날 영광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겸손하고도 잊혀진 역사의 숱한 신앙인들을 대표하는 분이 아닐까?

그녀가 걸친 외투의 짙은 흙색은 겸손의 표지이다. 긴 겉옷의 옅은 초록색은, 비록 십자가의 발 밑에 있었을 절박한 상황일지라도 그녀의 마음 안에 깃들여져야 하는 굳센 희망의 상징을 보여준다. 그녀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털어놓고 있는 비밀을 주의깊게 듣고 있다. 그들의 손동작은 악마의 덫과 죄의 사슬로부터 당신의 벗들을 구해주신 예수님께 대한 무한한 경탄을 암시한다.

⑤ 백 인 대 장

이 백인대장은 예수께 대한 믿음으로 아들이 치유되었고, 그 가족 모두가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요한 4,46. 53) 그의 왼쪽 어깨 너머로 치유된 그의 아들의 조그마한 얼굴이 보이고, 그 소년의 뒤에 세 사람의 이마가 보인다. 그들은 신앙에로 인도된 백인대장의 가족으로 보인다. 화가가 백인대장의 머리 둘레에 후광을 그려넣지 않은 것은 아마도 아들의 얼굴을 그 위치에 그려놓기 위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백인대장의 신앙은 두 가지 형태로 표현된다. 우선, 오로지 예수님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그의 눈은 그분께 대한 신심을 드러내고 있고, 동시에 삼위일체께 대한 그의 신앙을 상징하는 펼쳐보인 오른쪽 세 손가락, 나머지 펴지 않은 두 손가락은 그리스도의 두 가지 본성(신성, 인성)에 대한 확고부동한 믿음을 나타낸다.

그는 가파르나움에 세워졌을 회당을 상기시키는(루가 7,5 참조) 한 나무 조각을 손에 쥐고 있다. 백인대장 아들의 치유 직전에 성 루가는 예수님의 다음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나에게 와서 내말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가르쳐 주겠다. 그 사람은 땅을 깊이 파고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루가 6,47-48)

백인대장은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나서 그 말씀들을 효과적으로 실천에 옮겼으며.(루가 1,3), “그와 그의 온 집안이 예수님을 믿었다”(요한 4,53). 이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해 옮기는 사람에 의하여 바위 위에 튼튼히 세워지는 집은 참으로 믿는 이의 가정을 의미한다.

10. 작게 그려진 인물들

성모님과 백인대장 에 신원 미상의 작은 두 인물들이 보인다. 왼쪽 사람은 백인대장과 비슷한 옷을 입고 있고, 마리아쪽의 사람은 평복을 하고 있다. 이들은 무릎을 들어올린 것하며 손을 엉덩이에 바쳐놓은 태도 그리고 예수님을 향하여 눈을 치켜뜨고 있는 것 등 똑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따라서 이 둘은 분명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두 사람은 “유다는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보낸 경비병들(유대인들)과 함께 한 때의 군인들(마인들)을 데리고 그리로 갔다”(요한 18,3)라고 쓰여진 복음의 말씀대로, 유대인으로서 로마인들과 함께 예수님을 교수형에 처하는 임무를 띤 인물들이다.

그들이 축소되어 그려져 있는 이유는 단순히 그들의 역할이 적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는 그들이 예수님을 죽인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누가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바치는 것이다”(요한 10,18)라는 말씀을 잘 새겨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예수님을 반대하여 매질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지만, 그것이 오히려 예수님을 하느님의 영광에로 높이 들어올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11. 수탉

예수님 왼쪽 다리 가까이에, 수탉 한 마리가 있다. 이는 성 베드로의 배반을 상기시켜주는 닭이 아니라, 이제와 영원히 세상에 떠오르는 참 빛이요 태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 사실, 베드로 사도가 말했다 : “여러분의 마음속에 동이 트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는 어둠 속을 밝혀 주는 등불을 바라보듯이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겠습니다”(1베드 1,19). 또한 성 요한은 “어둠이 지나가고 참 빛이 이미 비치고 있기 때문입니다”(1요한 2,8)라 쓰고 있다.

나아가 “이와같이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하신 말씀처럼, 우리는 세상의 빛이어야 한다.

12. 십자가 밑에 있는 인물들

십자가 밑의 네 사람 중 둘은 아마도 오랜 기간 신자들의 친구로 지워져 보이지 않는다. 둘은 상체만이 십자가 안으로 들어와 있다.

이 사람들은 누구일까? 먼저 그들이 조개껍질로 된 울타리에 둘러싸여 있는 것을 주시한다면, 이미 그들은 하늘 나라에 들어간 사람들로 간주된다. 게다가 그들은 예수님을 직접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후광을 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은 그들이 하늘 나라에 속해 있지만, 그들 몸의 상체만을 보이고 있듯이 지금은 불완전한 여정에 있을 뿐이다. 그들을 주의깊게 응시해 보면,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순례자와 같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고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우리를 뽑아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거룩하고(그들의 후광을 보아) 흠없는 자가 되게 하시어 당신 앞에 설 수 있게(그들이 예수님 곁에 있음으로) 하셨습니다”(에페 1,4)라는 바오로의 표현이 적절함을 알 수 있다.

13. 돌

이콘의 맨 아래에는 돌 아니면 바위로 보여지는 것이 있다. 아마도 이 바위는 교황의 수위권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만약 이콘 전체가 하느님의 나라를 드러내면 여기 표면에 나타나는 것이 반석과 같이 보인다고 생각할 때, 이 반석은 그리스도가 세우신 교회의 기초로서의 반석, 즉 베드로와 그 후계자들의 수위권으로 보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반석은 우리 각자에게 개인적인 메시지를 주고 있다. 즉 말씀을 실천한다면 반석이 된다. 과연 우리들의 영적인 건물은 견고한 것일까?

14. 글씨

예수님의 후광 위그리스어로 쓰여진 I,H,S는 예수 이름의 첫 세 글자로서 유대인의 왕,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뜻한다. 그 원제가 예수님의 생애를 요약하고 있다. “나자렛에서 무슨 신통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요한 1,46)라는 성서의 말대로, 여기 예수님이 이스라엘에서 가장 경멸받는 마을의 출신이라는 사실을 통해, 그의 신분에 대한 지독한 모욕이 증언된 것이다. 반면에 예수님의 영광이 당신의 왕권에 대한 보편적이고 공식적인 선언으로 말미암아 널리 포고되었다.

이 제명은 또한 모든 세대와 온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께 내린 판결문에 대한 요지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그분을 “육의 눈(세속적인 표준)으로”(2고린 5,16) 바라보면서 사기꾼으로 여기는가 하면(마태 27,36), 아니면 성령의 힘을 입어 그분을 “정말 하느님의 아들”(마르 15,39)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육적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영적인 것은 생명을 준다”(요한 6,63)는 말씀 그대로이다. 이 제명 앞에 사람은 예수님을 택하든가 아니면 반대하든가 해야 한다. 예수님의 다음 말씀을 상기하자 :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차라리 네가 차든지, 아니면 뜨겁든지 하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러나 이렇게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미지근하기만 하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묵시 3,15-16).

15. 원형 안의 예수님

이콘의 맨 위쪽의 원형 안에는 살아 계시는 예수님의 또 다른 신비의 차원이 나타나 있다.

예수님이 오른쪽 다리를 올리시는 동작은 승천을 나타낸 것이고, 그분이 입고 계신 긴 금빛 통솔 옷은 승리와 왕권을 나타낸다.

어깨 위에 펄럭이는 진붉은 색의 영대는 “요나단이 왕의 명령으로 영광을 차지하고 진홍색 사제복을 입은 것을 보고 그를 비난하던 자들은 모두 도망쳐 버렸다”(1마카 10,64)라 쓰여진 성서의 구절처럼, 사랑 안에서 행해진 당신의 통치와 왕권을 상징한다.

왼손에 쥐고 계신 십자가는 승리의 도구요 정의의 지팡이이다. 그러나 이 십자가는 “당신 왕권이 정의의 홀(忽)이 되어”(시편 45,7) 지금은 황금색을 띄고 있다. 사실상,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선포할 따름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렸다는 것을 유다인들에게는 비위에 거슬리고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그가 곧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힘이며 하느님의 지혜입니다”(1고린 1,23-24)라고 한 성 바오로의 말씀대로, 우리는 이 십자가에 의하여 심판받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얼굴을 보면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띄고 계시다. 실상 예수님은 “즐거움의 기름으로 도유되셨다”(시편 45,8). 그 분을 환영하는 천사들도 곧 주님이 입으신 것처럼 붉은 색, 금색의 옷들로 치장하고 있다. 아버지의 곁을 떠나 세상에로 파견되시는 아드님을 목격한 그 천사들이 아버지 품으로 되돌아가는 예수님을 환호하며 맞이하고 있다(요한 16,28).

16. 하느님 아버지의 손

이콘 맨 꼭대기의 반원 안에 축복을 내리고 있는 손은 성부의 오른손이다. 아버지의 축복은 예수님이 죽음을 통해 얻어주신 성령의 선물임에 틀림없다. 이것은 예수께서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는 더 유익하다.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그 협조자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보내겠다”(요한 16,7)라고 약속해 주신 그대로이다.

성령께서도 똑같은 역할을 수행하시겠지만,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예수님의 업적을 완성하고(요한 14,26), 우리로 하여금 진리를 온전히 깨닫도록 해 주실 것이다(요한 16,13).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께서는(요한 15,1) 당신의 선물인 “생명의 샘”에 의하여 많은 열매를 맺으시고 당신을 믿는 이들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게 될 것이다(요한 17,1). 그리고 이렇게 아드님의 영광이 믿는 이들 안에서 드러날 때, 아버지의 영광도 아드님을 통해 드러나신다(요한 17,1).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Selected 성 다미아노 십자가에 대한 설명
청산별곡
9846 2013-08-03
6 성 다미아노 십자가 앞에서 드린 기도
청산별곡
7073 2013-07-28
5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
청산별곡
6011 2013-07-13
4 좋은 수도자와 헛된 수도자
청산별곡
6268 2013-07-13
3 참되고 완전한 기쁨
청산별곡
7234 2013-03-26
2 태양의 찬가
함혁
10566 2012-03-27
1 하느님의 겸손한 종
함혁
7693 2012-03-27
Tag List
X
Login

브라우저를 닫더라도 로그인이 계속 유지될 수 있습니다. 로그인 유지 기능을 사용할 경우 다음 접속부터는 로그인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단, 게임방, 학교 등 공공장소에서 이용 시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으니 꼭 로그아웃을 해주세요.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