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시스 수도회

1: 회개

 

 

 

성 프란시스

 

1. 회개

 

 

들어가며

 

오늘은 앞으로 있을 여섯 강의 가운데 첫 번째 시간입니다. 이번 첫 강의에선 프란시스 생애에서 핵심적인 사건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강의만 듣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작은 소모임을 만들어 토론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프란시스가 살았던 세계에 대한 이해

 

우리는 프란시스의 생애를 이해하기 앞서 그가 살았던 세계에 관한 것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가 살았던 세계는 우리들의 세계와 완전히 다를 뿐만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약 800년 전이었습니다. 그래서 문화와 종교, 정치와 같은 것을 고찰하는데 있어 많은 차이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800년 전 이태리에 간다면 시대의 엄청난 변화를 발견할 것입니다. 당시에 봉건체제는 몰락하고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급속히 늘어나고 있었으며 충분한 식량을 잉여 주민에게 공급하기 위하여 새로운 경제제도가 발전했습니다. 식량과 의복, 기타 생활 필수품의 매매가 중요해졌습니다. 새로운 상인계급이 발생했으며 상품거래를 돕기 위한 상업, 은행, 화폐제도가 발전했습니다. 이 활동은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소도시에서 일어났습니다. 프란시스의 아버지는 프랑스와 같이 먼 곳으로부터 직물을 거래하는 포목상이었습니다.

 

당시 이태리는 통일된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교황이 일부 영토를 그리고 나머지는 신성로마 황제가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영주들이 다스리는 다양한 소국들이 있었습니다. 이들 세력간의 권력투쟁으로 그곳에는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각 읍과 도시들은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한 성과 방어벽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씨시와 같은 도시들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시의회가 지배하는 실질적인 자치 공동체들(Communes)이었습니다.

 

종교세계 또한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평신도 단체들이 단순한 생활을 통한 신앙의 쇄신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 단체들 가운데 일부는 이단으로 떨어져 교회로부터 단죄되었습니다. 회교도로부터 성지를 해방시키기 위한 십자군운동이 있었습니다. 분도회와 같은 낡은 수도생활의 양식을 개혁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요약하자면 프란시스는 엄청난 변화와 갈등의 시대에 살았습니다.

 

원천자료들에 대한 이해

 

프란시스의 생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다양한 전기들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는 혼란스러울 수도 있는데 때때로 그것들은 매우 다르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읽을 때와 같습니다. 마태, 마르코, 루가, 요한은 우리들에게 예수의 각기 다른 모습들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복음서를 이해하기 위해서 단지 복음서를 읽을 뿐만 아니라 왜 쓰여졌고, 누구를 위해 쓰여졌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프란시스의 전기들은 우리들에게 비슷한 도전을 줍니다. 우선 우리는 원천자료들이 현대적인 전기물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들은 중세시대의 문학작품들입니다.

 

프란시스의 생애를 이해하기 위한 원천자료들에는 두 개의 주요한 흐름이 있습니다. 하나의 흐름은 프란시스 생애에 대한 체계적 서술을 보이는 잘 구성된 “생애”입니다. 첼라노의 토마스와 보나벤투라가 쓴 프란시스의 전기들은 이 형식입니다. 또 다른 흐름은 제대로 체계를 갖추지 못한 체 이야기들을 모은 것들입니다. `완덕의 거울'과 `잔 꽃송이'가 그렇습니다.

 

저의 이야기에서는 주로 첼라노의 토마스와 보나벤투라에 의한 전기를 인용할 것입니다.

 

프란시스는 1226년에 죽었고 1228년에 시성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교황 그레고리 9세는 첼라노의 토마스 형제에게 프란시스의 생애를 책으로 쓸 것을 명하였습니다. 이것을 첼라노의 토마스 형제는 아마 다음 해에 이를 완성했습니다(이것은 `제 1생애'로 알려졌습니다). 당시의 형제들은 프란시스의 전기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프란시스를 직접 만났거나 만났던 또는 형제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교황의 관심은 교회를 쇄신시키데 있었습니다. 교황은 프란시스를 잘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프란시스의 삶이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모범이었는지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레고리 9세는 회개의 모델이며 모든 회개자들을 위한 주보성인으로 선포했던 프란시스의 전기를 원했습니다. “제1생애”에서 프란시스는 회개하기 전에는 엄청난 죄인으로 묘사됩니다. “주님의 손이 그에게 내리시어 지존하신 분의 오른손이 하나의 변화를 엮어 냈으니, 그를 통하여 죄인들에게 은총으로 회복되리라는 확신을 주기 위함이었고, 그가 하느님께 대한 모든 회개의 모범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첼라노, 1생애, 2). 첼라노의 토마스의 제1생애는 보통 사람들이 프란시스에게 배울 수 있고 그들의 신앙이 소신될 수 있도록 쓰여졌습니다. “만약 누가 이 어려운 일을 하고자 하며, 보다 크나큰 은총을 찾아 힘쓰고자 한다면, 프란시스의 생활의 거울을 들여다 보며 모든 완덕을 배우도록 함이 좋을 것이다” (첼라노의 토마스, 1생애, 90)

 

1244년에 프란시스 수도회의 총봉사는 첼라노의 토마스 형제에게 프란시스의 새로운 전기를 쓰도록 하였습니다. 새 전기에는 `제1생애'에 포함되지 않았던 프란시스의 생애에 관한 몇 개의 새로운 정보가 있었습니다. 또한 이때쯤 프란시스 수도회는 가난에 대한 자신들의 최초의 열망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몇몇의 최초의 형제들은 다른 형제들에게 이것을 상기시키고 싶었습니다. 첼라노의 토마스는 자신의 `프란시스 제2생애'에 이들 새로운 정보들을 포함시켰습니다. `제2생애'는 주로 형제들을 위해 쓰여졌고 프란시스의 최초의 비전(Vision)에 돌아오도록 형제들에게 던지는 도전이었습니다.

 

프란시스의 다음 전기(생애)는 1260년에서 1263년 사이에 보나벤투라 형제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그는 위대한 신학자였으며 “대전기”를 편찬하면서 프란시스의 생애에서 영적 성장의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했습니다.

 

프란시스의 회개

 

프란시스의 회개는 단 한번의 체험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를 깊이 감동시켰던 몇 번의 사건들이 있었으며 이에 대한 숙고 끝에 낡은 것들을 버리고 새로운 것들을 취하여 생활을 변화시키기 위한 이해를 그에게 주었습니다. 우리는 간략하게 이 사건들을 각각 살펴 볼 것이며, 전기들 가운데 하나에서 어떻게 기술되고 있는지 주의 깊게 들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 프란시스의 생애에서 이것의 중요성을 고찰해 볼 것입니다. 끝으로 우리들에게 이것의 중요성에 대해 토론할 것입니다.

 

 

프란시스가 25살쯤 되었을 때 그를 기진맥진하게 만들었던 오랜 질병을 앓아야만 했습니다. 그는 병중에 많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고 병이 회복되자 아씨시 인근의 산과 들을 돌아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들은 정말 아름다운 것들이었지만 자신은 그것들의 아름다움을 음미할 수 없음을 프란시스는 발견했습니다. 그러한 아름다움은 결코 그에게 기쁨을 주지 않았습니다.

 

보나벤투라의 말을 들어봅시다.

 

2. 그러나 그때까지는 프란시스는 그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조금도 몰랐다. 그는 아버지의 사업에 몰두하고 있었으며 그의 마음은 인간성의 타락 때문에 세속의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결코 그의 마음을 하늘로 끌어 올리는 것을 배우지 못했고, 천상적인 실체의 맛을 얻지 못했다. 역경은 사람의 정신적인 지각을 예리하게 하는 데 가장 좋은 수단이다. 그래서 그는 야훼의 손에 잡혔으며 가장 높으신 분이 그에게 관대함을 베푸셨다(에제 1,3 참조). 하느님은 그의 영혼이 성령을 받을 준비를 하도록 오랜 병고로 그를 낮추셨다. 그가 회복되어 보통 때와 같이 신분에 걸 맞는 옷을 비고 나가려다가, 귀족출신이지만 너무 가난하여 옷차림이 남루한 한 기사를 한 기사를 만났다. 프란시스는 측은히 여겨서 동시에 이중의 의무를 이루어 낸 것이니 첫째는, 가난한 사람을 가난으로부터 구한 것이고, 또 하나는 난처함으로부터 구하였던 것이다.

 

3. 그날 밤 그가 잠들었을 때 선하신 하느님께서 그에게 덧옷에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새겨진 갑옷이 가득찬 훌륭한 궁전의 환시를 보여주었다. 하느님은 그가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가난한 기사에게 베푼 친절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보답으로 갚아질 것이라는 것을 그에게 알리고자 함이었다. 그리고 프란시스가 이 모든 것이 누구 것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하늘로부터 이 모든 것은 자신과 자신의 기사들을 위한 것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하느님의 비밀스러운 계시를 해득한 경험이 없어서 보았던 것의 외양 넘어 있는 그가 알 수 없는 진실까지는 꿰뚫어보지는 못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그는 이 이상한 환시는 그가 큰 성공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의미하는 걸로 받아들였다. 그는 자신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에 대해서는 여전히 몰랐으므로 환시가 지시해주고 있는 것같이 군인으로서 뛰어나길 바라면서 아뽈리아의 고위 기사가 되고자 입대할 준비를 하였다. 그는 바로 그 후 출발해서 다음도시에 도착해서 잠이 들었을 때 하느님께서 자기를 부르시는 것을 들었다. “프란시스야, 누가 너를 위해 더 많은 것을 해 줄 수 있겠느냐? 주인이냐, 혹은 그의 종이냐? 부자냐 혹은 거지냐?” 프란시스가 주인, 즉 부자가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대답했을 때 “그러면 왜 너는 주님을 버리고 종에게 더욱 너 자신을 바치고 있느냐? 왜 너는 무한히 부유하신 하느님 대신에 거지를 택했느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주여 당신은 제가 무얼 하길 원하십니까?”하고 프란시스가 물었다. 하느님은 그에게 “네 고향으로 돌아가라. 네가 보았던 환시는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으로 네 안에서 프란시스는 지체하지 않고 아씨시로 돌아갔다. 그는 너무 기뻤고 미래에 대한 것 정도 없었다. 그는 이미 순종의 귀감으로 끈기 있게 하느님의 뜻을 기다렸다. (성 보나벤투라, 성 프란시스의 대전기 1. 2-3)

 

보나벤투라와 첼라노의 토마스는 다른 방식으로 이 이야기의 세부내용을 말하지만 핵심은 프란시스가 당시 젊은이들이 했던 것을 하여 세속적 영광을 얻으려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프란시스는 기사가 되기로 결심했었습니다. 전투에서의 승리는 그에게 칭송과 영예를 안겨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위하여 준비하며 들떠있는 프란시스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전투에 참가하기 위해 떠나려 하는 자식에 대한 그의 어머니의 걱정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정상적인” 것을 이제 막 시작하려고 하던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안심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먼저 그의 꿈은 자신이 기사가 됨으로 커다란 부를 얻을 것임을 확실케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후에 그가 두 번째 꿈을 꾸었을 때 주님의 음성을 들음으로써 처음의 생각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프란시스가 따르고 있던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주님이었습니까 아니면 종이었습니까? 프란시스가 섬기고자 소망하였던 아뽈리아의 귀족은 세상적 견지에서는 귀족이며 종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눈에서 그 귀족은 하느님의 종이었습니다. 프란시스는 자신이 아뽈리아의 귀족 보다 하늘의 주님을 섬긴다면 더욱 많은 것을 이룩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보나벤투라가 말하는 것처럼 “기쁨과 걱정에서 해방되어” 아씨시로 돌아왔습니다.

 

프란시스는 아씨시에 돌아와서 기도와 은둔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을 향한 깊은 탐구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것처럼 성서에는 야곱과 그의 아들 요셉 그리고 마리아의 남편 요셉, 또한 여타 사람들이 꿈을 꾸고서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 해석했던 많은 경우들이 있습니다. 하느님이 꿈을 통해 말씀하신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조금은 이상하게 보여집니다. 그러나 왜 프란시스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까? 중요한 것은 꿈을 꾸는 사람은 꿈을 주목하고 의미를 식별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감성적이며 이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프란시스는 이 모든 것들을 하였습니다. 이 꿈은 과정을 명백히 했으며 프란시스는 한 분이시며 참 주님이신 절대자 하느님을 위하여 세상적인 것들을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프란시스 회개의 시작이었습니다.

 

토론: 꿈은 여러분에게 실재입니까? 여러분은 꿈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를 고대합니까? 어떻게 듣기를 원하십니까?

 

나병환자

 

이 때부터 또 다른 사건은 프란시스에게 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나병은 당시에 흔했으며 나병환자는 정상사회에서 배척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도시 외곽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청년시절까지 자기 주위에 훌륭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갖춰져 있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던 프란시스는 혐오감을 주는 나병환자를 발견했습니다.

 

보나벤투라는 자신의 “대전기” 에서 그 이야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날 아씨시 아래 있는 들을 말을 타고 가다가 프란시스는 한 나병환자를 만났다. 전혀 뜻밖에 만난 것이어서 프란시스는 그를 보았을 때 혐오감을 느꼈다. 그때 그는 그리스도의 기사가 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완전한 자기가 되어야 하며 자기자신을 극복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자신의 결심을 상기했다. 그는 즉시 말에서 내려 그 불쌍한 사람에게 달려가 입맞추었다. 그 나병환자는 무언가 얻기를 바라며 손을 내밀었다. 프란시스는 돈을 그 손에 쥐어 주고는 입맞추었다. 그리고 말에 올라타 사방으로 이리저리 똑똑히 바라보았으나 거기엔 나병환자의 자취도 없었다. 그는 깜짝 놀랐으나, 그의 마음은 기쁨으로 넘쳤고 미래에 더욱 열심히 일할 것을 결심하며 큰 목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성 보나벤투라, 성 프란시스의 대전기 1.5)

 

우리는 이 사건은 프란시스에게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프란시스는 죽음에 임박해서 썼던 자신의 유서에서 다음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나 프란시스 형제에게 회개생활을 시작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내가 죄 중에 있었기에 나병환자들을 보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역겨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 친히 나를 그들에게 데리고 가셨고 나는 그들 가운데서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네가 그들한테서 떠나올 때에는 역겨웠던 바로 그것이 내게 있어 몸과 마음의 단맛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얼마 있다가 나는 세속을 떠났습니다.” ( 성 프란시스의 유언, 1-3)

 

프란시스에게 나병환자를 만나는 체험은 회개에서의 도구였습니다. 이것은 더 낳은 생활로 나아가겠다는 그의 확고한 결심을 행동으로 옮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 섬김에 관한 훌륭한 생각들을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프란시스가 가장 깊게 갖고있던 편견들에 도전하는 행동이 필요했습니다. 그러한 행동에서 프란시스는 참된 자유를 발견했습니다.

 

참된 자유를 경험합니까? 편견들이 일종의 감옥 속에 우리들을 가두고 있습니까? 프란시스는 자유에의 길은 가장 두려워 하는 것들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임을 우리들에게 보여 줍니다. 그대 우리는 그것들이 하느님 은총의 통로가 된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토론: 여러분이 두려워하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이에 정면으로 맞선다면 당신에 대한 힘을 잃어버리는 어떤 것입니까?

 

동굴

 

자신의 꿈 이후로 프란시스는 꿈의 의미와 이 후로부터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결정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 식별의 중요한 부분은 다른 활동으로부터 물러서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보통 일상적인 생활의 활동에 둘러싸여 있을 때에 식별을 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프란시스는 기도를 위해 자신만이 홀로 있을 수 있는 한 장소를 찾았습니다.

 

첼라노의 토마스는 다음과 말하고 있습니다. ...

 

6. 육신의 변화가 아니라 마음의 변화를 일으킨 프란시스는 아뽈리아로 가기를 마다하고 하느님의 뜻에 자신의 뜻을 굽히고자 애썼다. 따라서 잠시 세상사의 혼잡에서 물러나 자기 자신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간직하고자 애썼다. 그는 신중한 사업가처럼 미망에 빠진 자기의 눈에서 자기가 발견한 보화를 감추었고,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아무도 모르게 그것을 사고자 하였다.

 

자기와 동갑나기였기 때문에 다른 누구보다도 더 사랑한 친구가 아씨시 읍에 있었는데, 그들은 서로 사랑했고 친분이 매우 두터워 자신들의 비밀을 털어놓을 정도였다. 프란시스는 의견을 나누기에 매우 적합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그를 자주 데리고 가서, 값지고 엄청난 보화 하나를 자기가 발견했다고 말하곤 했다. 이런 말을 들으면 그 친구는 기뻤으며, 자기가 들은 일에 대해서 대단히 마음을 조이며, 요청이 있을 때마다 어디건 기꺼이 그를 따라가곤 했다.

 

아씨시 읍 근교에 동굴이 있었는데, 그들은 자주 그곳에 가서 보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자신의 거룩한 결심으로 인해서 이미 거룩해진 이 하느님의 사람은 동료를 밖에 기다리게 하고 동굴에 들어가곤 하였다. 그리고는 새롭고도 특별한 영에 충만되어 성부께 숨어서 기도하곤 하였다. 누구도 자신이 동굴 안에서 한 일을 알게 되기를 원치 않았고, 좋은 일이 있을 적마다 그것을 숨기는 것을 더 낫게 여겼다. 그러고는 자신의 거룩한 뜻에 관해 하느님하고만 상의했다. 그는 영원하시고 참되신 하느님께서 자기의 갈 길을 가르쳐 주시고, 당신의 뜻을 실행하도록 가르쳐 주십사고 열심히 기도했다.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안고 있어, 자신이 마음속에 품은 바를 행동으로 끝낼 때까지 쉴 수가 없었다. 갖가지 잡념들이 꼬리를 물고 지나갔고, 그 끈덕진 괴롭힘이 그를 몹시도 혼란스럽게 했다. 그의 내부는 거룩한 불로 활활 타고 있었으며 그의 마음이 지닌 이 열심히 외적으로 외적으로 숨길 수가 없었다. 그는 무거운 죄를 지어 엄위하신 분의 눈을 진노케 하였음을 뉘우쳤으며, 이제 과거의 악도 현재의 악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충분한 확신을 여전히 얻지 못하고 있었다. 친구에게 다시 나왔을 때 그는 기도에 애를 서 탈진한 나머지 들어간 사람과 나온 사람이 전혀 딴사람 같이 보였다.

 

7. 그러나 어느 날 그가 하느님의 자비를 애틋하게 청했을 때, 하느님께서는 그가 해야 할 일을 보여 주었다. 이에 그는 너무도 기뻐 즐거운 나머지 주체할 길이 없었고, 원하는 바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귓전에다 몇 마디를 중얼대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에 엄청난 사랑을 들여 마셔 침묵하지 못하고 말해버렸지만, 그래도 더욱 조심스럽게 또 알아듣지 못하게 말했다.

 

앞서 말한 대로, 자기의 각별한 친구에게는 감추어진 보화 얘기를 했으나, 다른 이에게는 비유적으로 말하려 했다. 아뽈리아로 가지 않겠노라고, 그러나 고향에서 고귀하고도 위대한 일을 하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가 아내를 맞이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하여, “프란시스야, 장가가고 싶으냐?”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대답하였다 : “나는 여러분이 지금까지 보아온 정배보다도 더 고결하고 아리따운 정배를 맞이하겠습니다 그녀는 아름다음에서 다른 이를 능가하고 지혜에서도 모든 이를 뛰어넘을 것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티없는 정배는 바로 그가 받아들인 신앙이었으며, 신앙과 진리 안에서 복음의 봉사자가 될 그에게 복음적인 모든 소명이 실현되어야 하는 것은 지극히 필연적인 일이었다. (첼라노의 토마스 1생애, 3. 6-7)

 

동굴 은둔에서 프란시스는 자신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았습니다. 그는 기사가 되지 않고 고향에서 위대하고 고귀한 행위들을 함으로 하느님을 섬겼습니다. 더욱이 결혼을 하기보다는 자신을 독신생활에 받쳤습니다.

 

프란시스에게 이 단계의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은 절친하고 신뢰했던 친구를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관심을 그 친구와 함께 나눌 수 있었습니다. 깊은 은둔과 기도의 시기는 매우 불안정한 시기일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은 중요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유형의 고독 속에서 미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프란시스의 이 친구가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프란시스와 함께 있으며 그의 말을 들어줌으로써 그는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는데 있어 프란시스를 도와주었습니다.

 

동굴은 모태와 같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프란시스는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어머니의 모태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체 이 은둔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이 그에게 하도록 시키는 것일 거라는 단순하고 분명한 확신으로 끝맺었습니다.

 

토론: 여러분은 기도를 위해 은둔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장소를 갖고 있습니까? 반드시 물질적인 장소가 아니더라도 여러분이 참으로 혼자 있을 수 있는 장소와 시간을 갖고 있습니까?

 

십자가

 

프란시스의 회개에서 또다른 핵심 사건은 아씨시 아래로 그리 멀지 않은 낡은 산 다미아노 교회에서 일어났습니다. 이 이야기에 대한 보나벤투라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1. 이 모든 시기 동안 그리스도는 줄곧 프란시스의 유일한 안내자였으며 이제 다시 한번 그리스도는 선하심 가운데서 그 은총의 달콤한 감화력으로 중재하셨다. 어느날 프란시스는 야외에서 묵상하기 위해시내를 떠나 오래되어 다 허물어져 가는 성 다미아노 성당 곁을 지나가게 되었을 때, 그는 들어가서 기도하고 싶었다. 그 성당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그려진 상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 그는 영혼의 큰 안식을 얻었고, 십자가를 응시했을 때 그의 눈은 눈물로 가득 찼다. 그때 갑자기 그는 십자가로부터 세 번이나 그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프란시스야, 가서 나의 집을 고쳐라. 이렇게 쓰러져 가는 것이 네 눈에는 보이지 않느냐.” 프란시스는 성당에 혼자 있었으므로 그 목소리에 놀랐다. 그러나 메시지의 힘은 그의 마음을 꿰뚫었으며 그는 탈혼되었다. 마침내 그는 자신에게로 되돌아와서 받은 명령을 준수할 준비를 했다. 비록 메시지는, 후에 성령이 이를 깨닫게 하고 그가 수사들에게 설명하였듯이, 사실은 그리스도가 “자신의 피로 값을 치르고 얻으신”(사도 20,28) 전세계의 교회를 말한 것이지만 그는 헐어진 성 다미아노 성당을 수리하는 데 기꺼이 자신을 바치고자 하였다.

 

성호를 긋고 그는 즉시 계획에 착수했다. 장사를 할 천을 몇 꾸러미 들고 곧장 풀리뇨에 가서 자기가 타고 온 말과 함께 그것들을 팔았다. 그러고 나서 아씨시로 돌아와 수리하라는 말을 들은 그 성당에 들어갔다. 거기서 책임을 맡고 있는 가난한 신부를 만나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성당수리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써달라고 그 돈을 내놓고, 잠시 동안이라도 자신이 그와 함께 살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그 신부는 그가 머무르겠다는 데는 동의했으나 그의 양친을 두려워하여 그 돈을 받는 것을 거절했다. 어떤 형태의 돈이든지 돈을 싫어하는 프란시스는 동을 창턱에 던져두고 먼지인 냥 그 돈에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았다. (성 보나벤투라, 성 프란시스의 대전기, 2.1)

 

프란시스는 교외(郊外)로 사색하러 갔었습니다. 그런 다음 이 교회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중에 십자가로부터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한가지는 정말 분명합니다. 주도권을 가졌던 분은 하느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성령은 프란시스를 이 교회로 이끌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로부터 그에게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들을 인식할 수 있었던 사람은 프란시스였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우리의 시야가 흐려졌기 때문에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으며 또한 성령의 부르심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프란시스는 처음에 건물을 다시 세우라는 것으로 이 부르심을 이해하였습니다. 후에 이것은 자신이 세우고 있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이 특별한 사건은 프란시스가 어떻게 자신을 향한 하느님 뜻에 더욱 정확한 이해에 점차적으로 다가가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의 즉각적인 응답은 자기 아버지의 가계에서 직물을 가져와 팔아서 사제들에게 돈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그는 핵심을 놓쳤습니다. 교회는 돈으로 재건될 수 없다. 또는 적어도 소유하고 있었던 돈으로는 충분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해답은 사랑과 섬김의 나눔 가운데 있습니다.

 

토론: 예수가 여러분에게 “나의 집을 다시 세워라”라고 말한다고 상상해보십시오. 여러분은 무엇을 하겠습니까? 왜?

 

참된 아버지

 

이미 프란시스에게 일어났던 다양한 일들은 급진적인 새로운 방식으로 그의 삶을 살도록 그에게 갈망과 용기를 주고 있었습니다. 그는 전심으로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심했습니다. 구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 외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거부하는 것은 세상적인 것들입니다.

 

그러나 하나의 상황이 해결을 필요로 했습니다. 아버지와의 관계였습니다. 프란시스는 아버지의 가계에서 직물을 훔쳐내어 팔았습니다. 교회의 사제가 돈을 받기 거절했을 때 프란시스는 돈을 내던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너무 화가 나서 프란시스를 찾으려 갔습니다. 프란시스는하느님의 권능을 위해 기도하며 아마 어떤 집의 지하실에서 한 달 동안 감금되었습니다. 자신이 감금되어있던 곳으로부터 빠져 나오자마자 다시 아씨시의 거리를 걸었습니다. 그를 본 이들은 그가 미쳤다가 말하였습니다.

 

아씨시는 매우 작은 도시로 곧바로 프란시스의 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부근에 있음을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잡아서 자기 집에 가두었습니다. 그는 프란시스의 마음을 변화시키기 위해 물리적 힘을 동원하였지만 성공하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사업상 여행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프란시스의 어머니는 그를 풀어주었습니다. 후에 그의 아버지는 돌아왔으며 이때 프란시스는 자기 아버지를 만나러 갔습니다.

 

첼라노의 토마스는 그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4. 그러자 그의 아버지는 프란시스가 택한 길에서 그를 되돌이 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아들로부터 강제로 돈을 다 빼앗으려고 있는 힘을 다했다. 이 하느님의 사람은 본래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거나 그곳의 성당을 위해 쓰고자 했었다. 그러나 돈을 좋아 하지 않았던 그는 돈이 지니는 어떤 좋은 점으로 해서라도 돈에 미혹될 수는 없었다. 돈에 대한 애착심에 사로잡히지 않았던 그는 돈을 잃는다 해서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승의 재물을 몹시도 경멸하고 천국의 재물을 그렇게도 탐냈던 그가 돈을 창틀 먼지 속에 던져 처박아두었고 그 돈을 찾아낸 아버지는 다소 광기가 식어 갔으며 탐욕의 갈증도 돈을 찾아낸 흥분에 어느 정도 풀어졌다. 그러고 나서 그는 자기 아들을 아씨시 읍의 주교 앞에 끌어내어 아들의 모든 소유권을 자기 손아귀에 포기하도록 하고 아들이 지닌 것은 무엇이건 돌려 받으려고 하였다. 프란시스는 이 일을 거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크게 기뻐하며 요구해 오는 일을 서둘러서 했다.

 

15. 프란시스는 주교 앞에 끌려 나오자 무엇이고 잠시도 지체하거나 주저하지 않았다. 참으로 그는 말을 기다리지 않고 또 하지도 않고 즉시 자기 옷을 벗어 들고 아버지에게 되돌려 주었다. 더욱이 자기 팬츠마저 그대로 두지 않고 모든 이 앞에서 완전히 벌거벗어 버렸다. 그러자 주교는 그의 의도를 감지하고 그의 정열과 확고함에 크게 감탄하면서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팔로 그를 끌어당겨 입고 있던 외투로 그를 덮어 주었다. 주교는 이 징표가 하느님에게서 온 것임을 명백히 깨달았고 자기가 현장에서 목격한 이 하느님의 사람이 취한 행동은 하나의 신비를 담고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러므로 주교는 이어서 그의 협조자가 되어 그를 보살피시고 격려하면서 자애심으로 그를 끌어안았다. 보라! 이제 그는 벌거벗은 채 벌거벗은 원수와 맞붙어 겨루며, 이승의 것을 모두 떨어 버리고 오직 주님의 일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것이다. 이제 그는 자기의 목숨을 가볍게 보고 그에 대한 온갖 근심걱정을 떨어버려 자신의 고달픈 길에서 가난한 몸으로 평화를 찾으려 하는데, 오직 육신의 벽만이 그 사이에서 하느님을 직접 바라보는 일에서 그를 떼어 놓으려 하는 것이었다. (첼라노의 토마스 1생애 6.14, 15)

 

보나벤투라는 프란시스가 했던 말들에 더욱 세부적인 내용을 첨가했습니다. “이제까지 나는 당신을 나의 아버지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나는 거리낌없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분은 나의 모든 부(富)이며 나의 모든 신뢰를 그 분께 둡니다” 다른 말로 하면 프란시스는 자신의 아버지를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이 순간부터 그는 오직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아버지 한 분만 있는 것입니다.

 

그토록 강하게 자기 아버지를 거부하는 프란시스를 상상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온전히 응답할 수 있기 위하여 이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프란시스와 아버지가 깨진 부자관계를 회복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이것은 프란시스가 자기 전생애 동안 간직하고 살아야만 했던 큰 아픔이었습니다.

 

토론: 여러분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말할 때에 하느님에 대한 여러분의 이미지는 무엇입니까?

 

결론

 

프란시스가 회개를 체험했던 방식들의 일부를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이 `프란시스에게 회개는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일어났던 갑작스러운 체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프란시스의 회개는 점진적인 것이었습니다. 매 단계는 다음단계로 이끌었던 토대였습니다.

 

핵심 요점은 매 단계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분은 하느님이었으며 응답하기에 충분히 감성적이었던 프란시스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프란시스 안에서 작용하는 이 과정을 공부함으로써 우리는 그를 더욱 깊게 이해하고 동시에 하느님이 우리 자신의 회개에서, 우리 자신의 삶에서 어떻게 활동하는지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토론

 

  • 여러분은 프란시스 안에서의 회개 과정을 어떻게 보았습니까?
  • 여러분은 자신의 삶에서 회개를 어떻게 체험했습니까?
  • 여러분은 이 둘을 비교함으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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