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시스 수도회

2: 겸손과 가난

 

 

 

성 프란시스

 

2. 겸손과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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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가 프란시스 성인을 생각한다면 즉시 그의 이름을 겸손 및 가난과 연결하여 생각한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프란시스 성인의 삶에서 이들 두 덕행들을 보여주는 몇 개의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는 토마스 첼라노와 보나벤투라에게 들을 것이다. 두 차례의 토론 시간이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겸손에 대해 고찰한 후이며, 두 번째는 가난에 대해 고찰한 후이다.

 

프란시스와 겸손

 

먼저 가난에 대해 생각해 보자. 단어의 의미는 “행동, 태도, 정신의 온유함과 겸손함의 자질을 가짐” 또는 “교만하거나 잘난체하지 않음”이다. 영어의 단어 “humility”는 원래 “대지” 또는 “땅”을 의미하는 라틴어 “humus”에서 나왔다. 땅은 무엇과 같은가? 땅은 매우 낮으며 우리는 땅 위에 서있다. 식물은 땅으로부터 자라난다. 만약 우리가 겸손하다면 땅과 같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사람들은 우리 위로 걸어 다닐 수 있었겠지만 종류의 생명이 우리로부터 자라날 수 있다.

 

겸손은 때때로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사람들은 겸손은 강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프란시스는 우리에게 이와는 다른 것을 보여준다.

 

겸손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프란시스가 그의 영적인 권고에서 “사실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있는 그대로이지 그 이상이 아닙니다”라고 썼듯이 우리는 독립된 창조물이 아니다.

 

원천 자료들 속에 있는 몇 개의 이야기들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이상하게 보이지만 그것들은 프란시스의 성격과 급진적인 복음생활에 대한 것을 묘사하고 있다.

 

“흔히 있는 일이었지만, 어떤 특별한 음식에 대하여 식욕이 동했을 때, 그는 거의 식욕을 채우려 하지 않았다. 한번은 몸이 쇠약해졌을 때, 그는 닭고기를 먹자 그럭저럭 기력이 회복되어 아씨시 읍내로 돌아왔다. 그가 성문 가까이 이르렀을 때, 그는 자기와 함께 있던 형제에게 밧줄로 그의 목을 메고 마치 강도를 다루듯 온 읍내를 끌고 다니며 큰소리로 다음과 같이 소리질러 알리라고 명령하였다 : “여러분이 모르는 동안에 닭고기를 먹고 디룩디룩 살이 찐 대식가를 좀 보십시오!” 이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기이한 광경을 보려고 달려갔다. 그들은 크게 한숨을 쉬며 울며 말하였다 : “온갖 생활을 육정으로 보내며 더럽게 만취하여 가슴과 몸둥이를 살찌게 하는 가련한 우리에게 앙화있을 지어다! “ 이리하여 마음이 찔린 그들은 그 장한 본보기로 말미암아 보다 나은 생활에로 나가도록 감동되었다. (토마스 첼라노, 1생애52)

 

프란시스는 사람들이 자기를 너무 고상한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는 언제나 자기는 모든 죄인들 중에서 가장 나쁜 죄인이라고 말했다. 그의 두려움은 과장되었지만 수도생활하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쉽게 불합리한 존경을 받을 수 있는지 이해하고 있었다.
보나벤투라는 자기 형제들에게 말할 때에 프란시스를 인용하고 있다.

 

“죄인도 할 수 있는 일을 해 놓고 자랑해서는 안 되오. 죄인도 단식, 기도, 통곡 그리고 육체적 고행을 할 수 있소. 죄인이 할 수 없는 한가지 일은 하느님을 충실하게 섬기는 일이오, 누구라도 하느님께 속해 있는 찬미를 그 분께 되돌려 드리고 충실히 하느님을 섬기고 자신의 재능을 그 분께 돌린다면 그는 진실로 자랑할 거리가 있는 것이오.” (보나벤투라, 대전기 6.3b).

 

이런 도전은 특별히 성직자와 수도자들에게 더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이 나약하고 죄인이지만 아직도 많은 보통 사람들은 마치 성인인 것처럼 바라본다는 것을 알고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그런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할 수 있다. 마치 일반 범죄자처럼 아씨시에 이끌려 들어옴으로써 프란시스 또한 단지 보통 사람이며 죄인임을 사람들에게 상기시켰다. 그러나 사람들에 미친 효과는 프란시스가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들은 프란시스와 비교하여 자신들은 너무 큰 죄인임을 깨달았다. 프란시스는 자신의 건강을 위해 너무 많은 양의 닭고기를 먹는 것을 걱정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나친 탐식 때문에 깊은 슬픔에 잠겼으며 프란시스가 모범을 보여준 더 나은 삶에 감동되어 눈물을 흘렸다.

 

첼라노는 계속한다.

 

그는 이와 비슷한 일을 자주 행했으므로, 온전히 자기 자신을 경멸할 수 있게 되었고, 또한 영원한 영광을 찾도록 남들에게 권유할 수 있었다. 그는 스스로 깨진 그릇처럼 대했고, 육신을 위한 어떤 두려움이나 염려의 부담이 없었으므로, 그는 임시적인 것을 간절히 바라는 육적인 사랑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모욕을 받을 때는 흔쾌히 자신을 거기에 내놓았다. 진정으로 자신을 천하게 여겼으므로, 그는 그의 말이나 모범으로 남들도 스스로를 경멸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 결과는 어떠했는가? 오히려 프란시스는 모든 이로부터 존경을 받고 칭찬을 받았다. 프란시스만 자기 자신을 가장 천하게 여겼으며 가장 심하게 경멸하였다. 그리하여 자주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때마다 깊은 아픔을 겪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회의를 거절하였으며, 그는 누군가에 의해서 비난을 듣게끔 마음을 썼다. 그는 형제를 그에게 불러 말하곤 했다 : “순명으로 이르는 말이니, 거칠게 나를 욕하고 남들의 거짓말을 물리쳐 진실을 말하시오.” 그리하여 그 형제가 마지못해 그를 촌놈이요, 고용된 종이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위인이라고 반복하여 말했을 때에 프란시스는 미소를 머금고 그때마다 박수로 환영하며 대답하곤 했다 : “형제는 참으로 진실한 말을 하였으니, 주께서 형제를 축복하시기를! 베드로 베르나르도네의 아들은 그런 말을 들어 마땅합니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비천한 출생의 상황을 회상하곤 하였다. (토마스 첼라노, 1생애 53).

 

오늘날 우리는 이와 같이 생각하지 않는다. 긍정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능력들과 자신들을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실재로 부정적 자기이해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고통을 겪을 수 있다. 그렇지만 프란시스는 하느님의 창조물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와 부정적인 자기 경멸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프란시스의 겸손은 특별한 열매를 맺었다. 다른 사람들과의 교제에서 잘난 체 하지 않게 되었다. 교만함없이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죄를 지었다고 느꼈을 때 그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았다. 첼라노에게 계속 들어보자.

 

그는 매사에 자기 자신이 경멸을 받을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보이고 남들에게 참된 고백의 모범을 보여 줄 목적으로 프란시스는 어떤 일에 실수하였을 경우, 설교를 할 때에 자기의 실수를 모든 사람 앞에서 고백하는 것을 부끄러이 여기지 않았다. 만일 어떤 사람에 대하여 어쩌다 나쁘게 생각하였거나 우연한 기회에 화내는 말을 하였으면 자기가 나쁜 생각을 품었거나 화를 낸 그 사람에게 아주 겸허하게 죄를 고백하고 그의 용서를 빌곤하였다. 흠잡을 데 없는 그의 결백함에 대한 증인인 그의 양심은 온갖 염려를 다하여 스스로를 보호하였으며, 그의 양심은 마음의 상처를 말끔히 가시게 해 줄 때까지는 프란시스를 쉬게 하지 않았다. 분명히 성 프란시스는 모든 선행에 있어서 진전이 있기를 바랐지만, 그 때문에 존경을 받는 것은 바라지 않았으며, 허영심이 생길까 두려워서 모든 방법을 다하여 탄복으로부터 도망쳤다. (토마스 첼라노, 1생애 54)

 

겸손은 순종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순종이란 무엇인가? 순종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주의해서 듣기위해 열려있으며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데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도회 구조 속에서 순종은 자신이 속한 수도회의 결정에 따라 살아가려는 의지를 의미한다. 순종은 자기 중심으로 향하는 교만함이 없을 것을 요구한다. 겸손함을 시험하는 잣대 가운데 하나가 순종이라 했을 때에 우리는 프란시스가 의지적으로 자신을 순종 아래 놓았음을 발견한다.

 

보나벤투라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복음에 나오는 지혜로운 장사꾼같이 프란시스는 모든 가능한 경우에서 유익함을 얻고자 또한 그의 모든 시간을 공로를 쌓는 데 보내고자 애썼다. 마찬가지로 그는 장상이 되는 것보다 차라리 다른이들에게 순종하면서 살고자 했으며 명령하기보다는 순종하길 바랐다. 그는 수도회 총장 지휘를 버리고 그가 항상 순종할 수 있는 원장을 모시길 원했다. 그는 순종의 결심은 너무나 풍성해서 그것에 복종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그것으로부터 덕을 보지 않고는 한 순간도 보낼 수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는 여행을 하는 길에 우연히 그와 함께 가게 되는 수사에게 항상 순종할 것을 약속했고 또 한번은 동료들에게 말했다. “하느님의 사랑이 나에게 주신 가지가지 은총 중의 하나는, 수도원에 들어온 지 한 시간 밖에 안되는 신참자일지라도 만일 그가 나의 원장이 되면 나는 그를 우리 형제 중의 최고령자이며 가장 경험 많은 사람인 것처럼 그에게 기꺼이 순종하리라는 것이오. 아랫사람으로서 자신이 모시고 있는 사람에 대한 사랑을 위하여 하느님을 기억하여야 하오. 장상이 점점 더 천해지면 질수록 그만큼 더 그에게 복종하는 사람의 겸손은 더욱 가치있는 것이오. (보나벤투라, 대전기6.4a)

 

누가 참으로 순종하는 사람인가? 보나벤투라는 프란시스의 이 말씀을 이야기한다.

 

한번 누가 참으로 순종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는 시체를 예로 들어 말하였다. “시체를 들고 당신이 좋아하는 어느 곳에 갖다 놓아 보시오. 그럴 때 그 시체는 옮겨진 데 대해 반대하지 않고 어디에 놓여지는가에 대해서도 불평하지 않고 밖으로 내던져졌을 때도 항의하지 않음을 볼 수 있지 않소. 그것을 왕좌에 놓으면 그것은 위로보지 않고 아래로 내려다 볼 것이오. 또한 당신이 그 시체에다 왕의 옷을 입히면 그것은 전보다 더 창백하게 보일 뿐이오. 이와 같은 사람이 진실로 겸손한 사람이오. 그는 그가 어디에 놓여있든지 꺼리지 않고, 다른 곳으로 보내지도록 애쓰지도 않소. 만일 그가 성직으로 직책이 높아지면 그는 자신의 겸손을 지니며, 그가 존경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그는 자신을 가치없는 존재로 생각할 것이오.” (보나벤투라, 대전기 6.4b)

 

겸손은 우리가 크게 오해하는 하나의 덕이다. 종교적 훈련에서 겸손에 대한 강조는 너무나 자주 단지 부정적이고 영혼을 파괴하는데 있었다. 겸손을 배울 수 있도록 비천하고 무의미한 임무를 수행하도록 타인들에게 자신의 권위를 행사하는 권력를 가진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나는 군대생활은 이런 왜곡된 순종으로 꽉 차 있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프란시스도 겸손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접근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는 겸손에 다가가는 신선하고 긍정적인 방식을 보여준다. 그는 바보로 간주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의 단순한 스타일은 순종에 철저한 이들을 경멸하기 보다는 순종에 불철저한 이들을 무기력하게 하고 이들에게 도전한다.

 

토론과 질문

 

(마지막 질문을 토론하는데 충분한 시간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나머지 질문들을 토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들은 우리 자신의 생각과 토론을 위한 출발점으로써 의도된 것입니다.)

 

  • 프란시스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에 어떻게 반응을 일으켰는가? ( 당신은 그것들을 다시 읽고 싶을 수도 있다)
  • 겸손에 관하여 그리스도와 프란시스의 모범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보았는가?
  • 한국사회는 자신의 윗사람에 대한 순종과 복종을 존중한다. 이것은 이곳에서 보여진 프란시스의 가르침과 어떻게 다른가? 복음서의 가르침과는 어떻게 다른가? 이것은 우리의 교회에 도전하는가?
  • 오늘의 세계에서 겸손은 무슨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 겸손은 자신에게 어떻게 도전하고 있는가?

 

프란시스와 가난

 

프란시스는 poverello, “작고 가난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필요한 무엇이든 자신에게 줄 것이라는 하느님의 선함을 믿으면서 총체적이고 급진적인 가난 안에서 자신의 삶을 살았다. 이것은 놀라울만큼 충만했다. 당시의 수도원들은 땅과 농장을 가지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강력했었다. 새로운 상인과 무역업자 계층은 상업제도를 발전시키고 있었다. 부유층에게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사기 위해 화폐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그러했는가? 언제나 그렇듯이 가난한 이들은 주변부에 머물러 있었다. 프란시스는 자신을 부자들보다 가난한 자들과의 연대를 선택한다.

 

보나벤투라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후하게 주는 분이신 하느님으로부터 프란시스가 받은 초자연적 선물 중에서, 완전한 가난에 대한 그의 사랑은 그를 정신적으로 부유하게 자라게 한 특별한 특권을 이루고 있었다. 그는 가난이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항구한 벗이었으나 지금은 그것이 현세상으로부터 모욕을 당하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그것과 불멸의 사랑 안에서 결혼을 했다. 가난을 위해서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포기했으며 그가 지닌 모든 것을 벗어 던졌다. 사람이 황금에 대해 갈망한다 하더라도 그가 가난에 대해 갈망했던 것만큼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어떠한 보화도 그가 이 복음의 진주를 지킨 것처럼 그렇게 빈틈없이 지켜진 예는 없었다. 그는 수사들 가운데서 가난에 반대되는 어떤 것이라도 보게 되면 특히 화를 내곤 했다. 그가 종교적 생활을 한 첫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유일한 재산은 수도복 한 벌, 바지 한 벌이었으며 그는 이것에 만족했다. 그리스도와 성모님이 겪으신 가난의 기억은 그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하였으며 그는 가난이 왕 중의 왕이신 분과 그분의 어머니의 생애에서 너무도 명백했기 때문에 가난을 모든 덕의 여왕이라고 불렀다. (보나벤투라, 대전기 7.1a )

 

보나벤투라는 가난에 대하여 프란시스의 말씀들을 계속 기록한다.

 

“나의 형제들이여, 나를 믿으시오. 가난은 구원의 특별한 방법입니다. 그것은 겸손의 근원이며 모든 완전의 뿌리이며 그것의 결실은 보이지 않으나 풍성하오. 그것은 우리가 모든 것을 팔아 사야 할 복음서에 나오는 밭에 감추어진 보화이오-그리고 살 수 없는 것은 그것에 대한 사랑으로 포기해야 하오.” (보나벤투라, 대전기 7.1b)

 

그의 가난을 향한 큰 갈망은 실천적 형태를 취했다. 수사들이 살았던 건물들과 사용했던 모든 것들은 이런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수사들이 건물을 자기들의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혹은 그 집이 너무 화려하기 때문에 성인 생각으로 그 집이 복음적 가난에 반대된다고 생각되면 여러 번 그는 수사들에게 집을 떠나라고 명령하기도 하고 심지어 집을 허물어 버리라고 명령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다. “가난은 수도회전체의 바탕이며 수도자들의 생활의 구조 전체가 가난을 기초로 삼아 세워졌다. 따라서 가난이 굳건하면 수도회가 건재할 것이고 가난의 토대가 침식되면 건물 전체가 완전히 파괴될 것이다.” (보나벤투라, 대전기 7.2b)

 

가난을 지키면서 느슨해질 수 있는 많은 유혹들이 있었다. 일부 형제들은 규칙을 완화시킴없이 수도회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묻기도 하였다. 이 형제들은 자신들이 필요할 때를 위해 따로 확보해 놓은 재산이 있는 다른 수도회들과 왜 똑같을 수 없는 이유를 프란시스에게 물었다.

 

또 한번은 뽀르지웅굴라의 성 마리아 성당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물질적인 곤란을 당하고 있어서 방문 온 수사들에게 대접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프란시스의 대리자가 그에게 다가와 얼마나 형편이 어려운가를 말하고 수도원에 들어온 자가 들어올 때 가지고 온 재산을 좀 소유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했다. 그러면 형편이 어려울 때는 이것에 의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느님의 인도를 받은 프란시스는 대답했다 : “나의 사랑하는 형제여, 하느님은 우리가 그 누구를 위해서도 회칙에 위배되는 죄를 짓는 것을 금하십니다. 나는 당신으로 하여금 가난을 지키고 복음을 지키겠다는 우리의 맹세에 대해 가장 가벼운 죄라도 짓게 하느님보다는 오히려 우리 귀부인의 제단 제대보를 벗겨 맨 제단이 된 것을 보게 하는 게 더 낫겠습니다. 복되신 동정녀는 제단이 적당히 장식되고 그 대신 우리가 지키겠다고 약속한 당신 아드님의 권고가 지켜지지 않게 하느니보다, 자신의 제단이 벗겨진 채로 있고 대신 복음적 권고가 완전히 지켜진 것을 보실 때 더 기뻐하실 것입니다.” (보나벤투라, 대전기 7.4)

 

가난의 준수는 복음의 권고들을 따르는 맥락 속에 있었다. 그리스도와 사도들은 가난했다 -그래서 프란시스와 그의 형제들도 가난했다. 물론이것은 가난과 가난의 준수로 일어났던 프란시스의 죽음을 동경하는 것은 아니다. 점차적으로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프란시스칸 수도원들(The friars)은 더욱더 많은 땅과 건물들을 축적함에 따라 더욱더 다른 수도회들(The religious orders)을 닮아갔다. 프란시스칸 사이의 대다수 논쟁은 이 가난의 문제에 있었다.

 

가난은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관심을 넘어선다. 실제로 이들 물질적인 것들 안에서의 가난에 관해 너무 염려하게 되면 이런 극단적인 관심은 가난을 위한 진짜 장애가 될 수 있다.

 

가난은 더 근본적인 어떤 것이다. 프란시스가 형제들을 위해 썼던 회칙은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다. “작은 형제들의 회칙과 생활은 순종 안에, 소유없이, 정결 안에 살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복음을 실행하는 것입니다.”(제2회칙) “소유없이”란 말은 라틴어 sine proprio의 번역어이다. 이 말의 의미는 “한 사람의 소유가 될 수 있는 어떤 것을 갖거나 계속하지 않음”과 같은 것이다. 계속되지 않는 것들은 물질적인 것들 뿐만 아니라 재능들과 타고난 자질, 경험, 학식이기도 하다. 이것들이 포기되어야한다.

 

이 가난의 결실은 하느님께서 필요한 것을 그들에게 제공해주심으로 자신을 불렀던 가난한 사람의 필요들에 응답했던 표면상의 기적적인 방식과 프란시스의 삶에서 보여질 수 있다.

 

결론을 맺기 위해 보나벤투라의 말을 다시 들어보자.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가난한 사람들은 겁낼 것이 아무것도 없다. 프란시스의 가난은 매우 잘 조달되었으므로 그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돈이나 다른 수단이 없을 때에도 음식과 마실 것과 집을 구해 줌으로써 기적적으로 조달해 주었다. 하느님께서 거룩한 섭리의 과정 속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필요한 것들을 그와 같은 가난이 모자라 하게 결코 내버려 두시지 않는다. 한 단단한 바위가 거지의 청으로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풍부히 주었다면,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떠한 것도 창조주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사람들에게 봉사하길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보나벤투라, 대전기 7.13b)

 

질문과 토론

 

(마지막 질문을 토론하는데 충분한 시간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나머지 질문을 토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들은 우리의 생각과 토론을 위한 출발점으로써 의도된 것입니다.)

 

  • 프란시스와 가난에 관한 이야기들에 대한 자신의 반응은 무엇인가?
  • 그가 행한 것과 같은 가난을 껴안는 프란시스에게 있어서 급진적인 것은 무엇이었는가?
  • 오늘날 사람들은 프란시스처럼 살 수 있는가?
  • 가난은 여러분에게 어떻게 도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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