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시스 수도회

6: 십자가

 

 

 

성 프란시스

 

6. 십자가

 

 

들어가며

 

앞선 다섯 차례의 세미나에서 프란시스의 삶과 가르침의 다양한 면들 가운데 일부를 고찰하였다. 세미나의 마지막 주제는 프란시스와 십자가이다. 십자가의 중요성과 프란시스의 삶과 사상에서 십자가의 중심성을 살펴볼 것이다.

 

예수가 십자가로부터 프란시스에게 말하다

 

번째 세미나(프란시스와 회개)는 성 다미아노 교회의 십자가로부터 예수의 음성을 듣는 프란시스의 이야기를 포함했다. 여러분도 아마 그 이야기를 알고 있다. 프란시스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로부터 “프란시스야, 보다시피 다 허물어져 가는 나의 집을 가서 수리하여라” 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거칠게 페인트가 칠해진 십자고상 앞에서 기도하면서 오래되고 방치돼서 거의 허물어져가던 성 다미아노 교회 안에 있었다. 첼라노의 토마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그때부터 십자가에 달리신 분에 대한 애처로움이 그의 거룩한 영혼에 뿌리를 내렸고, 아직 살에는 찍히지 않았지만 경의(敬意)로운 오상(五傷)이 그의 마음속 깊이 찍혔음을 경건히 추측할 수 있다” (2첼라노10). 그는 계속해서 “사랑한 분께서 그에게 말씀하실 때마다 프란시스의 영혼은 녹아들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자기 눈앞에 언제나 어른거리는 듯 그리스도의 수난을 큰 소리로 외치고 슬퍼하며 울음을 그칠 날이 없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상처를 기억하느라 길거리를 한숨으로 채웠고, 어떤 위로도 마다하였다. 절친한 친구 하나를 만나 그에게 자기가 슬퍼하는 이유를 알리자, 이내 그 친구도 비참한 마음이 들어 눈물을 글썽였다” (2첼라노11)고 쓰고 있다.

 

십자가는 프란시스에게 그리스도의 수난을 정말 실재적으로 상기시키는 것이 되었다. 십자가는 추상적 상징도 아니고 구원의 표시도 아니었다. 그것 이상으로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고통을 나타냈으며 그 고통의 실재를 프란시스에게 분명하게 했다.

 

그 시간 이후 십자가 - 그리고 그것이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고통받는 그리스도 - 는 프란시스의 기도와 삶과 생각의 중심이다.

 

프란시스를 위한 상징으로서 십자가

 

프란시스는 그의 형제들에게 “땅에서나 벽에서나 나눔에서나 길가의 담장에서나 예수의 십자고상 또는 십자가의 표시”를(1첼라노45) 볼 때는, 언제나 “주 예수 그리스도여, 당신의 거룩한 십자가로써 세상을 구속하셨사오니, 우리는 여기와 전 세계에 있는 당신의 모든 교회에서 주님을 흠숭하며 찬양하나이다” (유언 4-5)라고 주님을 찬미하며, 머리 숙여 공경할 것을 가르쳤다.

 

프란시스는 단지 몇 개의 기도문만 썼지만 아마 가장 아름다운 기도문은 십자가를 주제로 하고 있다. 초창기 수고들 중에서 이것은 프란시스가 성 다미아노 십자가 앞에서 드렸다고 판단되는 기도문이다.

 

지극히 높으시고 영광스러운 하느님이시여,
내 마음의 어두움을 밝혀 주소서.
주여, 당신의 거룩하고 진실한 뜻을 실행하도록
올바른 신앙과 확고한 희망과 완전한 사랑을 주시며
지각과 인식을 주소서. 아멘.

 

(성 다미아노 십자가 앞에서 드리신 기도)

 

더 나아가 우리는 그를 만났거나 보았던 일부 사람들의 환시에서 십자가와 프란시스를 동일시하는 표시들을 본다.

 

원천자료는 하루는 예정에 없이 프란시스를 만났던 세상적인 이익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세속시인으로서 널리 알려진 한 사람에 대해 말한다. 이 사람은 “대단히 번쩍이는 두 개의 칼로 십자형을 이룬 프란시스를 육신의 눈으로 보았다. 하나는 그의 머리에서 발끝으로, 또 하나는 가슴을 가로질러 양팔로 서로 교차하였다” (2첼라노 106). 그때 프란시스는 형제가 되려는 그 남자의 즉각적인 갈망을 일으키면서 세상의 허망함에 대해 그에게 말했다. 후에 파치피코로 알려진 그는 많은 환시들을 체험하였다. 이것들 가운데 이마에 커다란 타우 자(字)를 한 프란시스를 본 것도 있었다. (타우(τ)는 히브루어와 희랍어 알파벳 가운데 하나이다. 표지로서의 기원은 예언자가 “예루살렘 시내를 돌아다니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발칙한 짓을 역겨워 하여 탄식하며 우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해 주어라” 고 말했던 에제키엘서 9장 4절이다. 교황 이노센트3세는 제4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회개와 거듭남의 표시로 타우(τ)를 제안했다. 프란시스는 이 생각을 받아들였으며 벽에 그리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서명으로 타우(τ)를 사용했다.)

 

이와 유사한 회개 체험은 프란시스가 성 다미아노 교회를 다시 세우기 위해 돌을 샀던 아씨시의 사제 실베스터의 회개 체험이다. 실베스터는 더 많은 돈에 욕심이 있었지만 지상의 부에 대한 프란시스의 거부로 강한 도전을 받았다. 그때 그는 프란시스의 입으로부터 황금십자가 나오는 환시를 보았다. 황금 십자가의 끝은 하늘에 닿아 있었고, 펼친 두 팔은 세계의 양끝을 가슴에 품듯 안고 있었다. 첼라노의 토마스는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프란시스는 언제나 십자가와 더불어 사는 일에만 온통 마음을 썼으니 그가 십자가에 매달린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이 무엇이 이상한가? 신비롭게도 십자가가 그분 안에서 내면적으로 뿌리를 내려 좋은 토양에서 그것이 솟아나 이렇게 선명하게 꽃들이 피고 잎이 우거지고 열매를 맺는 일이 당연하면 당연하지 무엇이 놀랍겠는가? 이러한 토양에서는 딴 것이 솟아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비로운 십자가가 처음부터 프란시스라는 땅을 그 차지로 삼았던 까닭이다 (2첼라노 109).

 

더 나아가 프란시스와 십자가 -오히려 십자고상- 의 동일시는 “십자가를 주제로 설교하는 복되신 안또니오의 설교를 들을 때, 그가 자신의 환시에서 두 눈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복되신 프란시스 (3첼라노 3)” 를 보았던 모날도스 형제의 환시 속에 있다.

 

프란시스에게 십자가는 하나의 표시 이상이었다. 십자가는 사랑하는 주님의 현존을 나타냈고 그와 주님의 관계는 다른 이들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표시를 자신에서 볼 수 있을 정도로 친밀한 것이 되었다. 첼라노의 토마스가 썼듯이 프란시스는 십자가가 그 안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는 나무처럼 자랄 수 있었던 비옥한 대지와 같이 되었다.

 

오늘날 십자가는 우리들에게 무엇인가? 아마 각자는 자신의 신앙과 회심의 역사가 다른 만큼 다양한 대답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많은 의미들과 해석들을 지닌 풍부한 상징이다. 그래서 대답의 다양성에 놀라지 말아야 한다. 십자고상은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고통의 표시이다. 예수가 없는 십자가는 부활의 표시이다. 또한 십자가는 세상 위에 들려졌으며 권능으로 다스리는 그리스도의 표시일 수도 있다. 십자가의 옆으로 펼쳐진 기둥에서 세상을 위한 사랑으로 쭉 펼쳐진 예수의 팔들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십자가의 수직으로 세워진 기둥에서 하늘과 땅의 연결됨을 볼 수 있다. 십자가를 그 안에서 아픔과 고통은 풍족한 새 생명으로 변화되는 생명의 나무로 볼 수 있다.

 

프란시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살았다. 그래서 그에게 십자가는 생명의 길인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동일시의 부분이다.

 

프란시스가 오상을 받다.

 

프란시스는 세상을 떠나기 두 해 전에 라베르나산으로 피정을 떠났다. 거기에서 그는 금식과 기도하며 보냈으며 “천국과 같은 거룩한 관상의 달콤함의 흘러 넘침”을 즐겼다. (대전기 13장 1절a)

 

보나벤투라는 그 이야기를 계속한다:

 

프란시스는 하느님의 영감에 의해 만일 자신이 복음서를 펼치면 그리스도께서 자기에게 하느님의 뜻이 어떠하신지, 또 하느님은 자기 안에서 무엇이 실현되기를 보시고자 원하시는지 제시해 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프란시스는 열렬히 기도하고 제단에서 복음서를 가져와 믿음이 깊고 거룩한 수사인 동료에게 복된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그것을 펼치라고 말했다. 그는 복음서를 세 번 펼쳤는데 매번 수난의 장이 펼쳐져 프란시스는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에 했던 모든 일들에 있어서, 자신이 그분과 똑같이, 자기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분의 수난의 근심과 고뇌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와 같이 되어야 함을 깨달았다 (대전기 13장 2절a).

 

그의 예수를 향한 사랑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그리스도를 따르는데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던 강력한 불꽃으로 커졌다. “동정심의 무아경지 속에서, 크신 사랑으로 스스로 십자가에 달리시길 허락하신 그리스도로 변해졌다” (대전기 13장 3).

 

보나벤투라는 계속한다: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무렵의 어느 날 아침에 산에서 기도하고 있던 중, 프란시스는 여섯 날개가 달린 세라핌이 하늘의 가장 높은 곳에서부터 내려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모습은 재빨리 그 가까이 내려와서는 공중에 멈추어 섰다. 그때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 즉 양손과 발을 쭉 벋친 채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의 상이 날개 중앙에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날개들 중에 두 날개는 그의 머리 위로 올려져 있었고, 한편 나머지 두 날개는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프란시스는 그것을 보고 놀라 당황하였으며 그의 마음은 기쁨과 슬픔이 섞여 흘러 넘쳤다. 그는 그리스도가 세라핌의 모습을 띠고 그토록 은혜 가득히 자기를 배려해 준 방법에 대해서 대단히 기뻤으나,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사실이 그의 영혼을 동정심으로 가득한 비애의 칼로 찔렀던 것이다 (대전기 13장 3절).

 

이 환시에서 프란시스는 자신이 “육체적 순교가 아니라 정신적 열망으로써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와 유사하게 완전히 변형되었음” 을 배웠다. 환시는 사라졌지만 “그것은 그의 마음을 열심으로 불타오르게 하였으며 그이 몸에는 기적적으로 그와 똑 같은 것이 새겨진 프란시스”를 남겨 놓았다.

 

생애의 마지막 몇 년 동안 프란시스는 십자가에 못 박힘의 표시를 그의 몸에 계속 지녔다.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의 상처와 못처럼 생긴 돌기들에서 자주 피가 흘러 나왔다. 이것들은 자신의 가장 가까운 동료들을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숨기는데 최선을 다했을지라도 프란시스에게 엄청난 고통을 일으켰다.

 

그렇게 “그리스도의 참된 사랑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당신의 모습으로 변화시켰다” (대전기 13장 3). 프란시스의 회심은 십자가와 함께 시작됐고 세속적 삶은 십자가에 못 박힘의 표들을 간직하고 계신 그분과 함께 끝났다.

 

당신의 회심 초기에 당신 앞에 놓여졌고 당신은 나무랄 데 없이 생활함으로써 항상 그것을 지니고 다녔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모범을 주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당신이 마침내 복음적 완덕의 최고 경지에 도달했음을 명백히 증거하고 있다 (대전기 13장 10절).

 

이것은 신비이다. 첼라노의 토마스는 이에 대하여 “그것은 언어로는 설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어서 아마도 육신에 드러났어야만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언어가 미치지 못하는 경우에는 침묵이 말하도록 놓아두자” (2첼라노 155장 203절) 라고 썼다.

 

토론과 질문

 

  • 여러분은 특별히 좋아하는 십자가나 십자가 그림을 갖고 있는가? (예를 들면 집이나 교회에?) 이것을 여러분이 좋아하는 이유는? 이것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인가?

 

결론

여섯 차례의 세미나들은 프란시스의 삶의 주제들 가운데 일부를 따라갔다. 이 순서는 무작위적인 것이 아니라 보나벤투라가 쓴 대전기의 목차를 따르면서 프란시스의 영적 발전의 패턴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우리는 프란시스와 회심으로 시작했다. 두 번째는 프란시스와 가난과 겸손이었다. 이 두 주제는 세속적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프란시스를 보여주었다. 다음 두 세미나들(프란시스와 창조와 동정심과 평화, 프란시스와 기도)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조명된 프란시스를 보여주었다. 끝으로 5차와 이번 세미나(프란시스와 성서와 설교, 프란시스와 십자가)들은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에 이르는 프란시스를 보여주었다. 영성생활에서 이 세 단계(정화, 조명, 완덕)는 프란시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또한 그것들을 따를 수 있다. 아니 참다운 영적 지도자인 성령에 의해 그것들을 따라 이끌어질 수 있다. 우리들 각자는 다르다. 그리고 우리가 프란시스로부터 어떤 것을 배울 수 있지만 아직은 우리들 가운데 그와 똑같은 사람은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려고 노력하는 것만큼 안내자로써 프란시스와 함께 걷자.

X
Login

브라우저를 닫더라도 로그인이 계속 유지될 수 있습니다. 로그인 유지 기능을 사용할 경우 다음 접속부터는 로그인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단, 게임방, 학교 등 공공장소에서 이용 시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으니 꼭 로그아웃을 해주세요.

X